괴담창고




견과류를 맛있게 먹는 방법 중 하나를 소개하겠다.
바로 테이블을 채울 만큼 많은 견과류를 와르르 쏟아놓고 취향껏, 양껏 먹는 것이다.

촤르르르 소리와 함께 캐슈넛이 쏟아진다.
엄마와 함께 먹기에 양이 너무 많았지만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향기가 침을 고이게 하고, 눈앞을 가득 채운 듯한 그 모습에 행복할 뿐이었다.

하나를 집어먹어보면 오독오독 씹히는 그 식감과 입안 가득 고소한 맛이 돌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작게 한 줌을 모아 들어 한 입에 대여섯 개를 집어넣으면 꽉 채워진 그 느낌이 알 수 없는 만족감을 주었다.
반으로 툭 쪼개 맨들맨들한 안쪽을 가만히 느끼며 혀를 굴리다 천천히 깨물면 그 식감이 또 그렇게 재미있었다.

엄마도 하나 둘 캐슈넛을 집어먹으면서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있었다.

조금 더 큰 것, 조금 더 맛있어 보이는 것을 찾는 것일까.

확실히 중간중간 특별히 더 맛있어 보이는 캐슈넛이 있었다.
다른 것들 보다 조금 더 굵고, 빛깔이 좋은 그것들은 어떻게 보면 손가락과도 닮아있었다.

하나를 집어먹으려고 하니 똑같은 것을 본 것인지 엄마가 먼저 집어 냉큼 입에 넣었다.

캐슈넛은 많았지만 조금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그런 캐슈넛을 찾아보았다.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캐슈넛 더미 속에서 삐죽 돋아난 손가락 같은 것이 자신이 여기 있다 까딱거리는 것 같았다.

반갑게 집어 들려는 순간 또 엄마의 손이 먼저 닿았다.
커다란 캐슈넛을 입에 털어 넣고 우둑우둑 씹으며 미소 짓는 엄마가 거기 있었다.

“아! 그거 내가 먹으려고 했던 건데!”

“다른 것도 많이 있잖아. 그거 먹으면 되지.”

조금 실망했지만 여전히 캐슈넛은 많으니까 하는 생각에 아무거나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고소한 맛은 여전했지만 왠지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조금 신경질이 났다.

몇 개를 더 입에 넣고 억지로 씹어 삼킨 후 또 다시 큰 캐슈넛을 발견했다.
아직 입에 넣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좋아져 얼른 잡으려고 했다.

또다시 엄마의 손이 먼저였다.

엄마는 똑같은 미소로 똑같이 캐슈넛을 우둑우둑 씹으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 또! 내 거잖아! 내 건데!”

“얘가 왜 이럴까? 이렇게 많은데 아무거나 먹으면 되지.”

화가 났다.
일부러 놀리는 것이 분명했다.

오기가 생겨 눈을 부릅 뜨고 큰 캐슈넛을 찾았다.

엄마가 먼저 잡았다.

또 찾았다.

엄마가 먼저 잡았다.

한 번에 두 개가 있는 것을 찾았다.
하나를 뺏겨도 하나는 먹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엄마가 크게 한웅큼을 집어 단숨에 입에 쑤셔 넣었다.

입이 꽉 차서 그런지 눈을 크게 뜬 엄마가 이쪽을 보며 캐슈넛을 씹었다.
여유가 없는 입에 미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와드득와드득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캐슈넛 조각들이 몇 개 엄마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나 엄마에게 달려들었다.

“엄마 미워!”

소리를 지르고, 마구 팔을 휘둘렀다.

몇 번인가 손과 팔이 엄마를 때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가만히 캐슈넛을 씹고 있던 엄마의 입이 벌어졌다.

“이노오오오오오옴!”

길게 이어지는 고함소리에 놀라서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는 동안에도 엄마의 입에서 ‘이놈’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길어지고, 갈라졌다.

소리를 따라 엄마의 입은 점점 더 벌어져 턱이 빠질 것 같았다.

“엄……마?”

한참 숨을 토해낸 엄마가 상체를 앞으로 하여 이쪽을 노려본다.

“이놈이 엄마를 때려!”

엄마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며 또 소리를 지른다.
테이블 위에 있던 캐슈넛이 그 손에 부서지고, 캐슈넛 더미에 파묻힌 손은 손인지 캐슈넛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다른 걸! 먹으면! 되잖아아아아!”

몇 번이나 테이블을 내려친다.
부서진 캐슈넛의 냄새가 진한 머리를 띵하게 울린다.
튀어 오르는 캐슈넛 사이로 엄마의 얼굴이 보이고, 손이 보인다.
손가락 같은 캐슈넛이 온 사방에 튀어 오르고 캐슈넛 같은 손가락이 보인다.

캐슈넛이 쪼개진다.
손가락도 쪼개진다.

캐슈넛이 쏟아진다.
손가락도 쏟아진다.

어느새 엄마의 손에는 손가락이 잔뜩 생겨 있었다.

“다른 거어어어얼! 먹으라고오오오오오!


머리를 흔들며 소리를 지른다.

흔들리는 머리 출렁출렁 흔들리고, 늘어지더니 눈앞을 꽉 채울 만큼 부풀어 올랐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좁은 주방에서 가면 얼마나 도망갈 수 있을까.
뒷걸음질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벽에 막히고 말았다.

엄마가 다가온다.
꾸물거리는 머리카락들이 벽처럼 다가온다.
손가락에 손가락에 손가락들이 돋아나고 엉킨 것이 다가온다.

그리고 찢어질 듯 크게 큰 눈이 다가온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잘못했……”

몸을 웅크린 채 빌고, 또 빌었다.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으아앙! 잘못했어요!”

큰소리를 내면 또 혼날까 꾹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눈을 질끈 감고, 정신없이 울고, 또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아무 일도 없어 조심스럽게 눈을 떠보니 그곳은 내 방, 이불 안이었다.

꿈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일어나지는 않았다.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혹시 방을 나가면 캐슈넛 냄새가 나지 않을까.
멀리서 들리는 소리가 혹시 캐슈넛 씹는 소리는 아닐까.

이 어둠이 혹시 머리카락인 것은 아닐까 싶어서.




트위터 @Bong2_lians님이 제보해주신 악몽을 각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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