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창고


얼마 전, C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평소 운동을 많이 해서 겉으로 몸이 좋은 것이 티나는 친구였는데,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어지간히 취한 손님이 아니면 시비 걸리는 일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언제나 당당했고, 무서움을 모르고 다녔다.

C가 일하는 편의점은 사거리에 있었는데 좀 오래된 건물이라  화장실이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화장실을 가려면 편의점을 나와 조금 떨어진 노래방 건물을 가야 했는데 이상하게 사장님에게 받은 열쇠가 맞지 않았다고 한다.
별 수 없이 참았다가 집에 가서 해결하고는 했는데, 정 급할 때는 길 건너 맞은 편에 있는 빵집에 가서 화장실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루는 정말 참기가 힘들어서 빵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 빵집도 오래된 건물이라 내부에 화장실이 따로 없어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나가셔서 왼쪽에 있는 큰길로 돌아서 가시면 화장실 있어요?”
“왼쪽이요? 오른쪽 골목이 아니라요?”
“네. 꼭 왼쪽 큰길로 가셔야 해요.”

C가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서 직진하면 화장실이 나온다.
그런데 굳이 큰길로 돌아서 가라는 것이다.
아마 저녁이 되면 불량 학생들이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많아서 그럴 것이다.
편의점 근처에도 그런 골목이 있다.
하지만 C는 그런 것에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양아치들이 C를 보고 피하는 일이 더 많았다.

그래서 C는 왼쪽 큰길이 아닌 오른쪽 골목을 선택했다.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고, 아무 일도 없었다.

다음날 C는 또 비슷한 시간에 화장실이 급해졌다.
그렇다고 같은 시간에 다시 빵집에 가서 화장실을 빌리기는 조금 이상할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래방 화장실을 가봤지만 역시 열쇠는 맞지 않았다.

“아오 씨!”

화가 나서 돌아서는데 어디선가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흠칫하기는 했지만 누가 전화라도 하는가 보다 하고 돌아왔다.

C는 바로 들어가기도 그래서 감정을 가라앉힐 겸 편의점 옆 골목에서 담배를 한 대 폈다.

담배를 두어 모금 폈을까. 옆을 보니 웬 빼빼 마른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기척도 없이 사람이 나타나 잠깐 놀라긴 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담배를 피려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담배를 피고 있지도, 꺼내지도 않았다.
편의점 손님인가 싶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취객인가 싶었지만 술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뭘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고, 다만 C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C는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빵집으로 향했다.
더는 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열쇠를 받은 C는 또다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골목 입구에서 아까 그 빼빼 마른 남자를 마주쳤다.
정면을, 그러니까 C를 바라보는 모습 그대로 흔들림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C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술에 취한 건지 약에 취한 건지는 몰라도 저 사람은 분명 정상인 상태는 아닐 거라는 판단하고 일단 피하기로 했다.
아무리 평소 몸을 단련했다지만 그렇다고 정신 나간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골목 대신 왼쪽 큰길을 통해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그 남자를 마주쳤다.
이번에는 골목길 출구 쪽, 원래대로라면 C가 나왔어야 할 곳에서 C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쯤 되니 C도 오기가 생겼다.

“아저씨. 왜 자꾸 따라와요? 술 취했으면 그냥 곱게 집에 가서 잠이나 자요.”

여차하면 힘으로 쫓아낼 생각까지 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남자는 그 말을 듣자 천천히 걸어 시야에서 사라졌다.

C는 세상에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다고 생각하면서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며 스마트폰 알림을 확인하고 있을 때 그것이 나타났다.

아니 그것들이 나타났다.

둘이었다.
아까 사라진 남자가 둘이 나타났다.
두 사람이 나타난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둘이었다.

C도 처음에는 아까 시비가 붙은 것 때문에 친구를 데려온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똑같은 옷.
똑같은 머리.
똑같은 자세.
똑같은 표정.
똑같은 키.

그리고 똑같이 어둡게 빛나는 빨간 눈.

“어……?”

무슨 상황인지 몰라 멍한 사이 둘은 C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둘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까 노래방 건물에서 들었던 그 말이었다.
그때는 빠르게 말해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완전히 처음 듣는 말이었다.

외국어도 아닌 것 같고, 한국어는 더더욱 아니었다.

아니 그냥 사람의 말 같지가 않았다.

C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에 둘은 바로 옆까지 다가와 귀에 대고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으아악! 저리 꺼져!”

마구 주먹을 휘두르며 무작정 달릴 수밖에 없었다.
정신없이 달려 골목으로 들어서 뒤를 돌아보니 그것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허억, 허억.”

잠깐 뭘 잘못 봤나 싶어서 다시 앞을 돌아보니.

골목 끝에 그것들이 있었다.

“우아악!”

달렸다.

뒤를 돌아보니 없다.

앞을 보니 다시 앞에서 다가온다.

또 달렸다.

쫓아오지 않는다.

확인 후 앞을 보면 또 앞에서 다가오고 있다.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언제까지 달릴 수는 없었다.
호흡은 엉망이고, 다리에 힘이 제대로 안 들어갔다.
이러다가는 결국 잡힌다는 생각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자도 아니면서 무작정 성호를 긋고 아무 신이나 생각나는 대로 기도했다.
입으로는 “제발 저리 꺼져!” 라면 욕하고 소리쳤지만 속으로는 기도했다.

아무리 기도해도 그것들은 다가왔다.

천천히 다가오던 그것들은 점점 겹치기 시작하더니 하나가 되어 C에게 다가왔다.

“끅끅끅, 귀엽네.”

그것은 C가 들으라는 듯이 웃으며 조롱하더니 조용히 사라졌다.

C는 그날 혼자 집에 갈 자신이 없어 사람을 불러 같이 집에 갔다.

-------------------------

트위터 @ClearNBrighter님의 경험담을 가공하여 괴담으로 만들었습니다.

반응형

'실화 괴담 박제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화) 아버지를 따라온 친구분  (0) 2022.02.25
(악몽) 다가오는 것  (0) 2021.09.09
(악몽) 이젠 친구잖아  (0) 2021.07.20
(악몽) 술 잔 너머의 풍경  (0) 2021.06.24
군대 경험담 - 부르는 초소  (0) 2021.06.23
donaricano-btn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