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가와 현의 한 작은 마을에 오래된 다리가 하나 있다. 이 다리에는 특이한 전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때때로 실종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다리를 건널 때, 특히 밤에 혼자 걷다 다리 아래를 보면 자신의 그림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난다고 한다. 이 그림자들은 말없이 걷기만 하며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어떤 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그림자와 눈을 마주치면 알 수 없는 무기력증과 우울감에 빠진다. 주민들은 이 그림자가 실종된 사람들의 영혼이라고 믿는다. 처음에는 그저 잘못 본 것으로 여겨졌지만 누군가 자신이 본 그림자와 똑같은 사람이 실종자 전단지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람들이 목격한 그림자의 모습은 모두 달랐지만 그 중 상당수는 분명 실종자였다. 아마 그 외의 그..
도시라고 시끄럽고 복잡한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외곽으로 가도 사람 없이 조용한 동네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렇기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은 꽤 티가 나는 편이다. 사람들 없을 시간에 괜히 어색하게 인사하는 사람이면 거의 새로 온 사람이다. 처음에는 일단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그 후로 그 사람은 항상 전화를 하고 있었다. 전화를 하면서도 나를 자꾸 쳐다보았다. 어느새 인사도 안 하게 되었고, 웃음도 짓지 않았다. 나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도 같았다. 이상한 기분에 서둘렀지만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급하게 동네를 떠났다. 나중에 가보았는데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쿄 번화가에서 벗어난 곳에 있는 어떤 작은 아파트에는 저녁에 인터폰을 받지 않는 암묵적 룰이 있다. 새롭게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 한 세입자는 보통 그런 사실을 모르고 인터폰을 받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따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서 경찰을 부르기도 하고, 이웃들에게 알리기도 하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아 이내 지쳐버린다. 하지만 며칠에 한 번씩 비슷한 일이 계속되면 그제야 이게 장난전화임을 알고 무시하게 된다. 가끔 장난전화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전화 주인을 찾아내는 경우가 있다. 어차피 아파트 내에서만 통하는 인터폰이니 작은 아파트를 열심히 뒤지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전화 주인을 찾아보면 그 집이 빈집이라는 것을 ..
도쿄 근교의 한 소도시에서는 기이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소문의 주인공은 '미아의 골목'이라 불리는 좁고 오래된 골목길이었다. 이 골목은 복잡한 도시의 한가운데 숨겨진 것처럼 조용했지만,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가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곤 했다. 목소리는 언제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엄마, 여기 있어요. 저를 찾아주세요." 처음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보곤 했지만, 아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점은 그 목소리가 항상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만 들렸다는 것이었다. 저녁 무렵, 해가 질 무렵이었다. 이 소문을 들은 몇몇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이 골목을 조사하기도 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골목에 얽힌 더 깊은 이야기가 드러났다. 수십 년 ..
초등학생일 때 학교 앞에는 문방구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조금 크고 세련된 곳이었는데 조금 좋아 보이는 볼펜이나 공책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다. 형광펜도 그냥 편의점에서 파는 것보다 2배는 더 비싼 것들도 있어서 가끔 그런 것을 사온 아이들이 자랑을 하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굉장히 작은 구멍가게였다. 겉에서 보기에도 작은 가게였는데 안에 들어가 보면 물건이 꽉 차 있어서 쉽게 돌아다니기도 어려웠다. 먼지도 많고, 물건들에 가려져서 어둡기도 한 그런 가게였다. 주인아저씨도 항상 말이 없고, 손에는 큰 흉터도 있어서 아이들은 그 구멍가게를 무서워했다. 하지만 그래도 장사가 됐던 것은 그 가게에서만 파는 장난감이나 간식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고 유독 거기에만 있는 것들이 있었다...
원룸촌 근처 편의점에서 일하다 보면 정말 온갖 사람들을 다 볼 수 있다. 생각보다 진상은 적지만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게 원룸촌이다. 속옷 위에 대충 롱 패딩만 걸치고 오는 손님. 사는 것도 없으면서 기웃기웃 매장 안을 살피기만 10분 이상 하는 손님. 꼭 식사시간에 와서 사람 쉬지 못하게 하고 라면 냄새 풍기는 손님. 매장 문 앞에서 담배 피는 손님.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꼭 반대로 버리는 손님. 등등. 항상 고정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고정적으로 사람을 힘들게 한다. 그래도 역 앞이나 술집 근처, 아파트 단지 근처 편의점의 사연을 들어보면 그것보다는 낫다 싶긴 하다. 워낙 오는 손님만 오다 보니 대충 뭘 살지, 뭘 할지 예상이 되는 것도 좋은 점이다. 그..
비가 많이 오던 어느 여름 장마 때의 이야기다. 지금은 흙바닥 놀이터가 별로 없지만 어릴 때만 해도 놀이터는 당연하다는 듯이 흙바닥, 모래바닥이었다. 아이들이 헤집으며 노는 놀이터에는 비가 오면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긴다. 물웅덩이가 생기면 또 그 물을 가지고 놀고, 물을 흘러가게 하면서 놀고, 흙을 매우면서 놀았다. 비가 많이 온 다음 날이었다. 놀이터에는 전에 없이 큰 물웅덩이가 생겨 있었고, 이미 많은 아이들이 모여 그 물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기껏해야 아이들 손으로 두 뼘, 깊이도 손등이나 겨우 잠기려나 싶은 물웅덩이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욕조처럼 넓고 손목이 다 잠길만한 물웅덩이가 생긴 것이다. 아이들은 환호하며 이 작은 호수를 꾸미고 놀았다. 한참을 놀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주변..
세상의 어딘가에서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외계 생명체들이 침입하고 있다. 그 외계 생명체들은 크고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어지간한 도시를 초토화 시킬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아간다. 극소수의 일부만 그것을 알고 대비할 뿐이다. 그리고 마법소녀 리-제네레이션도 그중 일부다. 아니 일부였다. 지구에는 많은 히어로들이 존재하고 각자 다양한 개성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몸에서 불을 뿜거나 물이 될 수 있거나 순간이동을 하거나 하는 등의 능력들이다. 그중에는 외계 생명체와 싸울 수 있는 능력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소녀의 능력은 후자였다. 마녀의 힘을 계승한 소녀가 가진 힘은 재생이었다. 어떤 상처를 입어도 순식간에 나아버렸다. 아니 상처가 낫는 정도가..
바람개비는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장난감이다. 가위로 종이를 오려 붙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재주가 좋은 아이들은 몇 장의 종이를 접어 가위질도 없이 커다란 바람개비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었다. 종이를 오리는 것도, 접는 것도 모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몇몇 아이들이 새로운 바람개비를 들고 와 놀았다. 색색의 색종이들이 빙글빙글 돌며 햇빛에 반짝거렸다. 한가로운 바람에, 달리는 아이들의 서슬에, 인내심 부족한 아이의 날숨에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날씨는 맑고, 주변에 시끄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는 논둑길 어딘가. 심심했던 아이들이 변덕스럽게 만든 바람개비를 들고 나와 노는 모습을 아이는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빈손을 들어 ..
그림자가 숨 가쁘게 움직였다. 아이는 이미 몇 번이나 그림자 연극을 봤지만 매번 가슴 졸이며 긴장했다. 지금 보는 장면은 괴물이 도망치는 주인공을 쫓아가는 부분이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주인공은 넘어지기도 하고, 기기도 하면서 괴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애쓴다. 괴물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한 번에 크게 크게 움직이기 때문에 주인공은 도망치지 못한다. 지친 주인공이 빨리 달리지 못해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 아이는 다음 순서를 알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주인공이 다급하게 주변을 두드리고 도움을 청하다 뒤돌아 괴물을 마주 보는 장면이다. 그림자뿐이지만 주인공의 절망과 공포가 아주 잘 느껴졌다. 얼굴 표정이 세세하게 나타나지 않아도 그 목소리와 대사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이는 바짝 얼어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