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라고 시끄럽고 복잡한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외곽으로 가도 사람 없이 조용한 동네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렇기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은 꽤 티가 나는 편이다. 사람들 없을 시간에 괜히 어색하게 인사하는 사람이면 거의 새로 온 사람이다. 처음에는 일단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그 후로 그 사람은 항상 전화를 하고 있었다. 전화를 하면서도 나를 자꾸 쳐다보았다. 어느새 인사도 안 하게 되었고, 웃음도 짓지 않았다. 나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도 같았다. 이상한 기분에 서둘렀지만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급하게 동네를 떠났다. 나중에 가보았는데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은 예전 같지 않았다. 사람이 많이 없어진 탓도 있고 사람이 유입되지도 않아서 그렇기도 하다. 조용했다. 확실히 예전에도 조용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낡은 집에 들어와 보니 낡은 내 사진이 있다. 만지면 바스러질 것처럼 풍화되고 빛바랜 사진이다. 주변에 적힌 글자는 이제 잘 읽히지도 않는다. 사진 속의 나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방에서 나오는 길에 막 집으로 들어온 할머니와 마주쳤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딱 벌리고 있어서 내가 더 놀랬다. 너무 오랜만에 봐서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역시 핏줄이 엮이면 잊히지 않는 모양이다. 뭐라고 막 소리치시긴 했지만 동네가 조용해서 다행이었다. 이 할머니도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좋을 거다. 난..
작은 시골동네라고 하지만 그래도 늦은 시간에 들어오는 막차정도는 있다. 이 버스는 유일하게 마을의 모든 정류장을 도는 버스지만 이용자는 거의 없다. 워낙 늦은 시간이 돌기도 하지만 모든 정류장을 도니까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은 그래도 한 명이 막차를 탔다. 가끔 이렇게 늦게까지 술을 마시던 사람이 타는 경우가 있다. 취객은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버스를 타자마자 잠이 들었고 얼마 뒤에 조금 정신을 차린 듯 주변을 살펴보고 창밖을 보다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으... 아, 이거 어디 가는 거야? 난 이런 거 탄 적 없는데!" 취객을 상대한 것은 처음은 아니기 때문에 기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운전을 이어갔다. "야! 내 말 안 들려! 차 세워! 차 세우라고!" 취객은 이제 난동이라고 부릴 만큼..
매일 아침은 이웃집 할아버지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어릴 때부터 있던 습관이다. 할아버지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계시고, 인사를 하면 가끔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시기도 한다. 힘이 없으신지 안 해주실 때도 많지만. 오늘도 평소처럼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출근했다. 인사는 받아주시지 않았다. 그리고 퇴근해 보니 이웃집에서 추모식을 한다는 게 아닌가? 갑자기 무슨 일인가 해서 가보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거다. 그것도 일주일 전에. 혼란스러운 마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침에 나가보니 여전히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계셨다. 무심결에 인사를 했지만 오늘도 인사를 받아주지는 않으셨다.
매일 옆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잘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도 아름다운 선율이고, 굉장히 기분이 좋아지는 연주였다. 처음에는 웬 피아노 소리인가 의아했지만 어느새 비슷한 시간에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를 기다리게 되었다. 한 번은 슬쩍 옆집의 창문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살펴보기도 했다. 아직 10대로 보이는 소녀가 굉장한 속도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그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하루정도 빠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일주일 가까이 되니까 어떻게 된 건가 궁금해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옆집을 찾아갔다. "아, 피아노 연주요? 아쉽지만 팔아버렸답니다." "그럼 피아노는요?" "팔아버려서 이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답..
요즘 매일 아침마다 불안해 미칠 것 같았다. 원인은 매일 오는 편지 때문이다. 말이 편지지 편지 봉투에 넣었을 뿐 제대로 우체국을 통해 온 것도 아니다. 적당한 종이에 대충 쓴 것을 접어 문틈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신발을 신으려고 보면 신발 주변에 편지가 떨어져 있다. 누가 보내는 지도 모를 편지가 매일,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몰래 놓여 있다면 누구라도 불안할 것이다. 특히 내용 때문에 더 그렇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오늘은 무엇을 할 계획인가요?] [어제 그 드레스는 정말 잘 어울려요.] [평소보다 늦게 오셨네요? 괜찮은 거예요?] 누가 봐도 스토커의 짓이 분명했다. 도대체 누구인지 주변을 찾아보기도 하고, 경찰에 신고도 해보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저 우..
주말이다. 오늘은 가까운 공원을 가기로 했다. 안개 때문에 조금 어둡기도 하고, 너무 일찍 나왔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사람이 몇몇 있긴 했다. 축축해진 옷을 갈아입고 시간이 좀 지나자 햇볕이 따뜻하게 비쳤다. 어느새 공원은 가족들과 커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제 뭘 해야 할지 고민되었지만 일단 산책을 하기로 했다. 그러다 한 여자를 발견했다. 그 여자는 나와 매우 흡사한 옷을 입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우연이겠지 생각했는데 볼수록 그게 아니었다. 똑같은 겉옷에 바지, 신발, 심지어 이어폰까지 같은 모델이었다. 지금 내가 입은 옷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라니...... 식은땀이 나고 긴장되었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깜짝 놀라 허둥지둥 옷을 뒤져 휴대폰을 꺼내 보니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
조별 보고서 방학 마지막 날이 되었다. 밀린 숙제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마지막으로 일기 형식의 자율 탐구 보고서가 남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조별로 모여 토론을 하고 그 주제로 개별 활동을 하여 작성하는 보고서다. 한 2주 차까지는 썼던 것 같은데 그 후로는 쓰지 않았던 것이 기억나 급하게 기억을 떠올려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절망하며 보고서를 펼쳤는데 놀랍게도 지난주까지, 그러니까 3주 차까지 보고서가 작성되어 있었다. 깜짝 놀라서 살펴보니 지난주에 했던 일들이 생각나며 '맞아, 그랬었지.' 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2주 차가 아니라 3주 차까지 썼었던 것이다. 기분 좋게 이번 주 보고서를 작성하고 학교에 가져갔다. 그리고 다시 조별로 모였는데 아차 싶었다. 이 보고서는 내 보고서가 아니었다...
이웃과 친해지기 뚜르르르르 여보세요? 야, 내가 어제 이사했잖아? 근데 여기 정말 너무 좋아. 이사하기를 잘 한 것 같아. 10층이라 그런지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좋고,다른 것보다도 이웃 사람들이 너무 좋은 거 있지. 다들 친절하고 말도 잘 통해. 조금 걱정했는데 다들 식사 한 번 같이 하니까 금방 친해질 수 있더라구. 아, 손님 오셨다. 미안, 다음에 통화하자. 그래도 이분이 우리 동 마지막 사람이니까 이제 여유가 좀 있을 것 같아. 도시락 나눠 먹기 두 여자는 함께 점심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오늘 메뉴는 샌드위치였다. A가 좋아하는 양상추 샌드위치였는데 동료는 언제부터 그렇게 채소를 좋아했냐며 웃었다. A는 한 입 크게 먹더니 보기보다 피클의 상큼한 맛이 좋다며 웃었다. 그들은 샌드위치를 다 먹..
편의점 CCTV 편의점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매일 밤 10시에는 편의점을 잠시 닫고 청소를 했다. 그런데 묘하게 청소를 하는 동안 누군가 자신을 살펴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 CCTV를 살펴봤지만 다른 사람은 찍히지 않았다. 사장님은 누가 밖에 있는 낌새도 없었고, 혹시 있더라도 문이 튼튼하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긴 하지만 역시 기분이 좀 이상하기 했다. 계획 여행 M는 무엇을 하든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여행을 가면 모든 일정을 정확히 계획하고, 그 계획대로 행동했다. 여자친구와 여행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모든 일정을 계획대로 보냈다. 그리고 하룻밤은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갑자기 생긴 파티에 참석했다. 그들과 함께 밤새도록 춤추고 노래하며..
창 밖의 주민 새로 이사 온 아파트는 솔직히 꽤 즐거웠다. 특히 15층이라 좋아했는데, 멀리까지 보이는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거실에는 큰 창문이 있어 햇볕이 잘 들어왔고, 새로 마련한 화분들이 테라스를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줬다. 주말이면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이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창문을 열면 만날 수 있는 이웃 주민들의 얼굴들도 늘 한결같아 좋았다. 반려동물 금지 오늘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어요. 이제 다 놀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만났어요. 조금 쓰다듬어주고 놀아주자 강아지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따라왔어요. 엄마는 "우리 집에는 반려동물 금지라서 이렇게 데려오면 안 돼."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다른 방법을 잘 몰라서 어쩔 수 없었어요. ..
첫 직장 오랜 취업 준비 끝에 은행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일을 하는 것이라 긴장했던 것과 다르게 첫날부터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손님들은 그녀에게 항상 미소를 지어주었고, 매니저는 그녀의 능력을 인정했다. 하는 일은 어려울 것도 없이 입금된 현금을 정확하게 세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그 후에는 돈을 잘 정리하고 퇴근하면 된다. 집도 가까워서 금방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방에는 웬 돈뭉치가 있었다. 이게 무슨 돈인지 고민하긴 했는데 일단 한 번 세보기로 했다. 한 번 해본 일이라 그런지 금방 셀 수 있었다. 친구와의 약속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만나는 약속이었다. 그 친구는 몇 분 뒤면 도착할 예정이었고 그때까지 카페에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친구에 대한 기억은 꽤 많아서 떠올리..
방 정리 미아는 어릴 때부터 방 정리를 해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항상 대신 방을 정리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어질러진 방을 그대로 두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오늘은 부모님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나 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미아를 불러 놓고 설교를 하셨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방을 그렇게 어질러 두고 나가면 어쩌니?" 평소보다 좀 덜 어지른 거였는데...... 뭔가 정말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으신 모양이다. 놀러간 집 민희는 어느 날 아침 집 앞 공원에서 산책을 하던 중 자기 또래의 아이가 혼자 노는 모습을 보았다. 생각해 보니 그 아이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민희는 괜히 신경이 쓰여 그 아이와 몇 번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민희에게 자기 집에 놀러 오..
아름다운 돌 친구들과 함께 오래된 골동품 가게에 갔다. 거기서 아름다운 나무 상자를 발견했는데 그 상자 속에는 아름답게 빛나는 깨끗한 돌들이 꽉 차 있었다. 가격이 조금 나가긴 했지만 친구들과 돈을 모아 사고, 각자 마음에 드는 돌 하나씩 가져가기로 했다. 신나게 집에 돌아와서 상자를 열어보니 가져온 돌들이 반짝반짝 빛났지만 역시 더러운 부분이 거슬렸다. 다행히 닦으니까 다시 깨끗해졌다. 할머니 요리 직장 동료로부터 추천받아 새로운 레스토랑에 방문했다. 이곳에는 특이한 메뉴가 있다고 했는데 메뉴판을 살펴보니 정말로 라는 메뉴가 있었다. '할머니의 맛의 살린 추억의 요리'라는 설명에 어릴 때만 봤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주문해서 맛을 보니, 어릴 때 딱 한 번 먹어본 할머니 요리와 맛이 똑같았다. 요리를 해..
친절한 웨이터 카페에 들어가자 웨이터가 '모든 것을 해결해 드립니다'라고 적힌 종이를 건넸다. 웨이터는 주문서에 커피를 체크하고, 내가 핸드폰 충전을 할 수 있도록 충전기를 가져왔다. 그리고 내 가방에서 능숙하게 이어폰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었고, 커피에 내가 원하는대로 설탕을 두 스푼 넣어주었다. 웨이터가 나에게 귓속말로 '원하시는 게 또 있으신가요?'라고 물었다. 웨이터가 이미 필요한 것을 모두 해주었기에 나는 더 이상 필요한 게 없었다. 카페에 들어선 이후 한 마디도 할 필요가 없다니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멈추는 시계 서재에 있는 시계가 자꾸 멈추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안 보는때 멈추는 건지 볼 때는 항상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시계의 시간은 모두 정상인데, 그 시계만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