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오랜 취업 준비 끝에 은행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일을 하는 것이라 긴장했던 것과 다르게 첫날부터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손님들은 그녀에게 항상 미소를 지어주었고, 매니저는 그녀의 능력을 인정했다. 하는 일은 어려울 것도 없이 입금된 현금을 정확하게 세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그 후에는 돈을 잘 정리하고 퇴근하면 된다. 집도 가까워서 금방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방에는 웬 돈뭉치가 있었다. 이게 무슨 돈인지 고민하긴 했는데 일단 한 번 세보기로 했다. 한 번 해본 일이라 그런지 금방 셀 수 있었다. 친구와의 약속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만나는 약속이었다. 그 친구는 몇 분 뒤면 도착할 예정이었고 그때까지 카페에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친구에 대한 기억은 꽤 많아서 떠올리..
1. 아무도 없는 집에 불까지 끄자 너무 조용해서 내 숨소리가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메아리가 아니었다. 2. 폐가에는 오래된 피의 냄새와 썩은 살의 냄새가 진동했다. 썩지 않은 것은 나를 노려보는 저것뿐이다. 3. 나는 가까운 공원의 의자에 앉아 슬픔을 달래려 했다. 왜 우냐는 소녀의 물음에 고개를 들어보니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4. 우리는 어디를 가나 한상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다들 내가 아니라 내 뒤를 보고 있었다. 5. 자꾸 이불이 침대 아래로 떨어져서 몸에 둘둘 말았다. 무언가 이불을 잡아당겼다.
방 정리 미아는 어릴 때부터 방 정리를 해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항상 대신 방을 정리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어질러진 방을 그대로 두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오늘은 부모님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나 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미아를 불러 놓고 설교를 하셨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방을 그렇게 어질러 두고 나가면 어쩌니?" 평소보다 좀 덜 어지른 거였는데...... 뭔가 정말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으신 모양이다. 놀러간 집 민희는 어느 날 아침 집 앞 공원에서 산책을 하던 중 자기 또래의 아이가 혼자 노는 모습을 보았다. 생각해 보니 그 아이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민희는 괜히 신경이 쓰여 그 아이와 몇 번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민희에게 자기 집에 놀러 오..
숲의 산책로 이용안내 안녕하세요, 라쿤산림국립공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안전하고 즐거운 산책을 위해 다음의 이용 규칙을 잘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1. 산책로 이용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이후 시간대에는 접근이 금지됩니다. 2. 공원 내에서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방문 후에는 반드시 쓰레기를 가지고 나가 주세요. 3. 야생 동물을 괴롭히거나 먹이를 주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4. 7번 산책로는 위험하다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되고 있습니다. 5. 갑작스런 폭우 시, 고립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특히 계곡의 수위가 급격히 높아질 수 있습니다. 6. 산책로 이용 중, 다른 이용객과의 거리를 최소 2미터 이상 유지해주세요. 7. 불의 사용은 금지입니..
아름다운 돌 친구들과 함께 오래된 골동품 가게에 갔다. 거기서 아름다운 나무 상자를 발견했는데 그 상자 속에는 아름답게 빛나는 깨끗한 돌들이 꽉 차 있었다. 가격이 조금 나가긴 했지만 친구들과 돈을 모아 사고, 각자 마음에 드는 돌 하나씩 가져가기로 했다. 신나게 집에 돌아와서 상자를 열어보니 가져온 돌들이 반짝반짝 빛났지만 역시 더러운 부분이 거슬렸다. 다행히 닦으니까 다시 깨끗해졌다. 할머니 요리 직장 동료로부터 추천받아 새로운 레스토랑에 방문했다. 이곳에는 특이한 메뉴가 있다고 했는데 메뉴판을 살펴보니 정말로 라는 메뉴가 있었다. '할머니의 맛의 살린 추억의 요리'라는 설명에 어릴 때만 봤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주문해서 맛을 보니, 어릴 때 딱 한 번 먹어본 할머니 요리와 맛이 똑같았다. 요리를 해..
1. 작은 방에 혼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는데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에 "지금 이 순간에도 뒤에서 보고 있다"라는 낙서가 적혀 있었다. 젠장, 들켰나 보다. 2.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는데, 반대편 창문에 내 모습이 비치지 않았다.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는데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3. 새로 이사 온 집의 벽에는 이전 주인의 사진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 왜 사진을 안 가져갔는지 궁금했는데 다음날 보니 사진 속의 사람이 사라져 있었다. 4. 밤에 잠들기 직전, 톡톡하고 문에 벌레 같은 것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아무도 없었는데, 바닥에는 작은 아이 손자국이 여러 개 남아 있었다. 5. 내가 설정한 알람과는 다른 노랫소리에 잠에서 깼다.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알람은 아직..
자꾸 열리는 문 집이 많이 낡아서 그런지 바람이 많이 비바람미 불 때마다 집 문이 천천히 열린다. 그럴 때마다 빨리 이사를 가야겠다고 한숨만 쉬었는데 어느 날 비가 많이 내리면 내릴수록 문이 더 활짝 열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 그런지 궁금해서 비가 오는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몇 번이나 비가 오기 전부터 기다려도 딱히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매번 발자국을 닦는 것만 귀찮았을 뿐이다. 유리병 속의 메시지 바닷가에서 유리병에 담긴 메시지를 찾았다. 메시지에는 "이걸 발견하면 아무것도 하지 마. 그냥 다시 물로 돌려보내."라고 적혀 있었다. 좀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서 별생각 없이 유리병을 다시 막고 바다로 던졌다. 그때부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먼저, 집의 문이 자동으로 잠겨서 열리는 일..
모두 주목해 주십시오. 언젠가부터 우리는 자연의 것들을 우리 마음대로 다루고 있습니다. 툭하면 자원을 고갈 시키고, 야생 생물들을 위기로 몰아넣고, 그걸 또 복원한다고 손을 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모든 것을 우리의 통제 아래에 놓아야 안심이 된다는 거죠. 자원이 많으면 많다고 소모하고,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대책을 찾습니다. 특정 생물의 개체 수가 많아지면 그것 때문에 생태계가 망가진다고 난리고, 적으면 또 적어서 멸종한다고 난리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짓을 반복할 거냐는 말입니다. 우리 역시 이 광활한 우주에서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개입하지 않아도 자연은 스스로 순환하고, 복원해 나갈 것입니다. 혹시 그러다가 생태계가 망가지는 부분이 눈에 띌 수도..
어디부터 말하면 좋을까. 일단 확실한 것은 이 악몽 같은 현실의 시작이 불면증이었다는 거다. 밤마다 악몽을 꾸고, 깨고, 다시 잠들지 못하고…… 똑같은 악몽도 아니고 매번 조금씩 다른 악몽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수면제를 먹어보기도 했지만 단지 잠을 잘 깨지 않을 뿐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똑같았다. 오히려 밤새 악몽에 시달려 더 피폐해졌다. 깨어 있는 시간이 악몽을 꾸기 위한 준비 같았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날도 많았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정말 효과가 좋다는 수면제를 하나 추천받았다. 무슨 성분이 어쩌고 했는데 그런 건 잘 모르겠고, 하여간 꿈도 꾸지 않게 잠들게 해준다고 했다. 정말 지금 딱 필요한 약이었다. 친구에게 약을 받아 집에 돌아와 한 입에 털어 넣..
행운에는 총량이 있다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 가지는 행운의 양이 정해져있고, 그걸 조금씩 소모하면서 살아간다는 모양이다. 아마 사람마다 정해진 양이 다를 것이고, 그 이상의 행운은 불운을 가져온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불운으로 먼저 값을 치르고 행운을 받았나 보다. 어릴 때 한 번 죽을 뻔했던 이후로 언제나 행운이 따랐다. 모든 순간 이기거나 잘 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순간만큼은 놀랄 만큼 운이 따라 주었다. 아마 불운을 겪은 만큼 행운이 넘치기 때문일 거다. 공부는 그다지 할 필요 없었다. 적당히 풀 수 있는 것만 풀고 모르는 것은 찍으면 된다. 그래도 중상위권은 충분했다. 일도 열심히 할 필요 없었다. 운이 좋은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직장 생활정도는 유지할 수 있었다. ..
G는 누구나 알아줄만한 대학의 미대생이지만 정작 그에게 그림은 단순한 숙제, 작업물이었다.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학원을 다니고, 실제로 그 결과 좋은 대학도 오기는 했지만 그는 한 번도 그림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미술은 ‘예술’이 아닌 ‘기술’이었다. 전혀 매력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미술에서 손놓고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대학은 졸업할 생각이고, 가능하면 이 길로 나아갈 생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제는 빼놓지 않았고, 전시회를 다니며 연구도 하고 있었다. 그날도 레포트 제출을 위해 전시회를 갔다. 유명한 누군가의 그림이라고 하지만 G에게는 역시 기계적 출력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어떤 부분에서 예술이라고 평가하는지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이해하고 ..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한 B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부터 갔다. 요즘 출장을 유난히 자주 다닌 탓인지 온몸이 찌뿌둥하니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이번 출장은 장거리라고 업무 앞뒤로 하루의 여유를 줘서 쉴 시간은 충분했다. 다만 혼자라는 점, 그리고 경비로 처리할 수 있는 비용이 많지 않다는 점 때문에 여행 분위기를 마음껏 내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제주도까지 왔는데 흑돼지든 뭐든 맛있는 것 정도는 먹고 싶은 욕심은 있었다. 결국 B가 선택한 것은 숙소를 저렴한 곳으로 잡고 그 돈을 식비에 보태는 것이었다. 편한 잠보다 좋은 밥을 선택한 것이다. 공항에서 회사 이름으로 빌린 렌터카를 타고 도착한 곳은 ‘ㅇㅇ장’이라는 여관이었다. 이래저래 낡기도 낡았고, 시설이라고는 싸구려 냉장고와 작은 TV 하..
동생이 죽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몇 년 되지 않았는데 이제 동생마저 죽었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유산과 보험금으로 살 집을 마련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작지만 여자 둘이 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집이었다. 힘들지만 그래도 살았다. 슬퍼도 살았다. 그런데 이제 좀 잊고 살만 해지니까 동생이 부모님 곁으로 갔다. 급사? 과로사?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동생에게 병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동생은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아니 다들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동생은 어지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툭하면 어지럽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너무 건강한 모습이라서. 힘든 일도 척척해내고 쉴 때 쉬는 요령 있는 아이라서..
초등학생일 때 학교 앞에는 문방구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조금 크고 세련된 곳이었는데 조금 좋아 보이는 볼펜이나 공책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다. 형광펜도 그냥 편의점에서 파는 것보다 2배는 더 비싼 것들도 있어서 가끔 그런 것을 사온 아이들이 자랑을 하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굉장히 작은 구멍가게였다. 겉에서 보기에도 작은 가게였는데 안에 들어가 보면 물건이 꽉 차 있어서 쉽게 돌아다니기도 어려웠다. 먼지도 많고, 물건들에 가려져서 어둡기도 한 그런 가게였다. 주인아저씨도 항상 말이 없고, 손에는 큰 흉터도 있어서 아이들은 그 구멍가게를 무서워했다. 하지만 그래도 장사가 됐던 것은 그 가게에서만 파는 장난감이나 간식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고 유독 거기에만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는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살려달라는 힘없는 외침과 절박한 표정, 피가 엉긴 손, 꺼져가는 눈동자. 천천히 죽어가는 그 여자를 끝까지 지켜보며 있었던 자신. 그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자연히 생활은 엉망이 되었고, 툭하면 잠에서 깨기 십상이었다. 고통의 나날. 이런 삶을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살인자에게 어울리는 그런 삶이었다. 하지만 참았다. 고통스럽지만 그 이상으로 두려웠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그는 성당을 찾았다. 이제 그만 그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신의 죄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의 죄를 고백하고자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