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공작소

(괴담창고) 믿고 싶지 않은 현실

너구리군 2022. 4. 25. 17:19



어디부터 말하면 좋을까.
일단 확실한 것은 이 악몽 같은 현실의 시작이 불면증이었다는 거다.
밤마다 악몽을 꾸고, 깨고, 다시 잠들지 못하고……
똑같은 악몽도 아니고 매번 조금씩 다른 악몽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수면제를 먹어보기도 했지만 단지 잠을 잘 깨지 않을 뿐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똑같았다.
오히려 밤새 악몽에 시달려 더 피폐해졌다.
깨어 있는 시간이 악몽을 꾸기 위한 준비 같았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날도 많았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정말 효과가 좋다는 수면제를 하나 추천받았다.
무슨 성분이 어쩌고 했는데 그런 건 잘 모르겠고, 하여간 꿈도 꾸지 않게 잠들게 해준다고 했다.
정말 지금 딱 필요한 약이었다.

친구에게 약을 받아 집에 돌아와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물 한 모금을 채 다 마시기도 전에 잠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효과가 정말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확실히 기분이 좋았다.
정말로 꿈을 꾸지 않았으니까.
이제 드디어 악몽에서 해방된 것 같아 환호했다.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걸…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좀비? 괴물? 하여간 사람과 비슷한 무언가였다.
이목구비가 다 뭉개진 채 이상한 쇳소리를 내는 괴물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방을 나와서 마주친 현실은 더욱 끔찍했다.
꿈틀거리는 살덩이로 된, 징그러운 혈관이 돋아난 벽.
집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은 수 십 년이 지난 것처럼 낡아 썩어가고 있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럴까 싶은 풍경이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또 다른 괴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누가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을 차리고 있을 수 있을까.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뒷걸음질 치다 보니 결국 벽에 막혀 더 도망갈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아까 봤던 괴물과 새로 나타난 괴물이 천천히 다가온다.

벽에 닿은 등에, 벽을 더듬는 손에 물컹한 살덩이의, 두근거리는 혈관의 감촉이 느껴진다.

괴물들이 내지르는 쇳소리 울부짖음에 귀가 쨍하니 울린다.

극한에 몰리면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했던가?
진짜 그렇게 되긴 했다.
무슨 용기가 난 건인지 주변에 잡히는 것은 아무거나 집어던졌다.
그러다 녹이 잔뜩 슨 골프채가 손에 잡혔을 때는 눈이 뒤집혀 그걸 휘둘렀다.

이 골프채는 아버지의 것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 그럼 아버지는 또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에 울컥해서 무작정 휘둘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두 괴물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뒤늦게 눈물이 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설마 이곳은 지옥일까?
자는 사이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것일까?

이 악몽 같은 상황에 절망하다 어느새 다시 잠이 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병원에서였다.
깨끗한 천장과 침대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음을 보여주었다.
또다시 끔찍한 악몽을 꾼 것이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어떻게 봐도 병원이다.
왜 병원에 와있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마 약해진 몸이 수면제를 버티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악몽도 그렇게 심했던 것일까?
아무래도 의사를 만나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움직일 수 없었다.
몇 번을 일어나려 시도했지만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나 소리를 질렀다.

“여기요! 의사선생님! 간호사분 없나요!”

소리치기가 무섭게 어떤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의사는 아니지만 밖에서 목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저기 제가……”

“당신을 마약 소지 및 투약, 특수 폭행,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네?”

“믿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현실입니다. 당신은 마약을 하고 환각 상태에서 가족을 죽였습니다. 발견 당시 약물 부작용으로 이상 증세가 있어 우선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악몽이구나……”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그 후에는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이 악몽이 어서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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