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공작소

(괴담창고) 바람개비와 아이

너구리군 2022. 3. 24. 19:20


바람개비는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장난감이다.


가위로 종이를 오려 붙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재주가 좋은 아이들은 몇 장의 종이를 접어 가위질도 없이 커다란 바람개비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었다. 종이를 오리는 것도, 접는 것도 모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몇몇 아이들이 새로운 바람개비를 들고 와 놀았다. 색색의 색종이들이 빙글빙글 돌며 햇빛에 반짝거렸다.


한가로운 바람에, 달리는 아이들의 서슬에, 인내심 부족한 아이의 날숨에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날씨는 맑고, 주변에 시끄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는 논둑길 어딘가.


심심했던 아이들이 변덕스럽게 만든 바람개비를 들고 나와 노는 모습을 아이는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빈손을 들어 후하고 바람개비를 부는 시늉을 해보지만 약간의 바람에 침이 섞여 허공에 날릴 뿐이었다.


무리 지어 놀던 아이 중 한 명이 다른 아이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멀리 있어 잘 들리지는 않지만 아마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비루한 바람개비가 문제였던 모양이다.


조금 어긋나게 오려져 날개의 크기가 제각각인 바람개비. 금색 색종이, 노란 색종이, 파란 색종이도 아닌 진한 갈색의 보기 싫은 색종이로 만든 바람개비.


바람개비만 가지고 놀기에는 재미가 부족했던 아이들에게, 자신이 만든 바람개비에 자부심을 가진 아이들에게 그런 바람개비는 놀려 먹기 좋은 수준 이하의 것일 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아이에게는 저런 바람개비도 없는데.


언성은 높아지고, 결국 놀림당하던 아이가 성질을 부리며 무리를 이탈했다. 돌아선 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 것도 같았다.


숨어서 지켜보던 아이는 조금 놀랐다. 성난 아이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던 아이는 멀리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자기들끼리 노느라 아무도 이쪽에 관심을 주지 않고 있었다.


성난 아이도 바람개비만 노려보느라 이쪽에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고 있었다.


논둑길 끝자락의 저수지에 도착한 아이는 손에 쥐고 있던 못난 바람개비를 던졌다. 마음에 상처만 주는 그것을 버렸다.


그 순간 저수지에 숨어 있던 아이는 성난 아이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움켜쥐고 물속으로 끌어당겨 그대로 삼켜 버렸다. 물소리는 크지 않았고, 멀리 있던 아이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이는 잠시 눈치를 살피다 끈적거리는 손으로 버려진 바람개비를 조심스럽게 집어 입가로 가져갔다.


“꺼륵.”


트림과 함께 약간의 침이 바람개비에 튀었다.


어쨌든 바람개비가 조금 돌아갔다.


아이는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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