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공작소

(괴담창고) 그림자 연극

너구리군 2022. 3. 23. 20:16


그림자가 숨 가쁘게 움직였다. 아이는 이미 몇 번이나 그림자 연극을 봤지만 매번 가슴 졸이며 긴장했다.


지금 보는 장면은 괴물이 도망치는 주인공을 쫓아가는 부분이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주인공은 넘어지기도 하고, 기기도 하면서 괴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애쓴다.


괴물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한 번에 크게 크게 움직이기 때문에 주인공은 도망치지 못한다. 지친 주인공이 빨리 달리지 못해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


아이는 다음 순서를 알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주인공이 다급하게 주변을 두드리고 도움을 청하다 뒤돌아 괴물을 마주 보는 장면이다.


그림자뿐이지만 주인공의 절망과 공포가 아주 잘 느껴졌다. 얼굴 표정이 세세하게 나타나지 않아도 그 목소리와 대사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이는 바짝 얼어붙은 채 다음 순서를 기다렸다.


커다란 그림자가 점점 작은 그림자에게 다가간다. 작은 그림자는 벽에 찰싹 붙다 못해 거의 안 보일 정도였다. 울음소리만 아니었으면 없어진 줄 알았을 거다.


그림자가 그림자를 낚아챈다. 그림자가 들렸다. 그림자는 힘이 없고 가벼웠다.


공중에서 몇 번 흔들리던 작은 그림자는 결국 큰 그림자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쑥 하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겹쳤다.


잠시 그 상태로 몸을 흔들던 괴물은 바닥으로 기어들어가 사라졌다.


무서운 연극은 그대로 끝났다.


아이는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며 창가에서 떨어졌다. 매번 조금씩 달라지지만 이 결말만은 항상 똑같았다.


어쩌다 한 번씩 반지하 창가에서 볼 수 있는 골목길 그림자 연극.


아무도 믿지 않아 혼자만 알고 있는 공연이 끝났다. 내일은 골목길 맨홀 앞에 과자라도 둘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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