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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괴담) 여신을 사랑한 자

너구리군 2021. 6. 10. 00:32



어느 날 한 남자가 여신을 보았다.
언제나 밝은 후광에 감싸여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여신을 보았다.
눈부신 빛 속의 여신은 언제나 그의 경외를 받았으나 날이 저물기 직전 잠시 빛이 흐려지는 순간 그는 여신의 보았고 경외 대신 사랑을 바쳤다.
하지만 여신은 인간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며 인간의 목소리는 신에게 닿지 않기에 남자의 마음은 메아리보다도 의미 없었다.
실의에 빠진 남자는 서서히 말라갔고, 차라리 죽기를 결심한 어느 날 악마가 나타났다.
악마는 남자의 수명을 오 년 바치면 그 여신을 집에 데려다주겠다 하였다.
남자는 죽기 전의 목숨으로 잠깐이라도 여신을 보기 위해 악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악마는 내일 아침이면 여신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남자는 자신이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고 허무한 마음에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남자는 못 보던 큰 자루 하나가 방 한가운데 있는 것을 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루를 풀어보니 그 안에는 여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여신으로부터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고, 남자가 눈이 부셔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여신은 사라지고 말았다.
남자는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여신을 만나기를 바랐으나 이제 말을 한 반이라도 걸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런 남자 앞에 다시 악마가 나타났다.
남자는 오 년의 수명을 더 줄 테니 여신의 빛을 빼앗아 달라고 하였다.
악마는 흔쾌히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
다음 날 또다시 자루를 풀었을 때 남자는 더 이상 눈을 감을 필요 없이 여신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신은 남자의 말을 듣지도 않고 그대로 날아올라 창밖으로 사라졌다.
남자는 또 소원을 빌었다.
다시 여신을 데려와 달라고, 그리고 날 수 없게 날개를 빼앗아달라고.
악마는 다시 십 년의 수명을 받아 갔고, 남자는 다시 자루를 받았다.
자루 속에서 나온 여신에게 남자는 사랑을 말하고 싶었으나 여신은 남자를 밀치고 집 밖으로 달려나가 사라졌다.
악마는 이제 한 번만 더 소원을 들어주면 남자에게는 수명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괜찮다며 한 번 더 소원을 빌었다.
이제는 마지막이 될 자루에서 나온 여신은 더 이상 빛나지도 않았고, 날개도 없으며, 팔다리를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남자는 그런 여신에게 당신을 위해 자신의 수명을 모두 바쳤노라 말하며 열열한 사랑을 고백했다.
여신은 그런 남자의 고백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사랑을 바치는 것까지는 허락하겠다고 하였다.
남자는 그 허락에 뛸 듯이 기뻤으나 자신에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절망했다.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으며 그녀 역시 아무것도 해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남자는 다시 한번 악마를 불렀다.
남은 몇 시간의 수명도, 영혼마저도 줄 테니 마지막 소원을 들어달라도 하였다.
악마는 만족스러워하며 남자에게 소원을 말하라 하였고 남자는 기뻐하며 말했다.
저 여신의 아름다움을 빼앗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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