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공작소

(창작 괴담) 봄과 여름 사이

너구리군 2021. 5. 31. 20:47


봄과 여름 사이의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비가 내린 후의 습기와 이제 막 달아오르는 아스팔트가 만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살짝 어지러움이 느껴지는 날씨다.

만일 여기가 사막이었으면 바다가 나타났다고 소리 지르머며 뛰어갔을지도 모르겠다고 실없는 생각을 하는 그때였다.

신기루로 물결치는 길 위로 무언가 검은 것이 슬금슬금 지나가다 눈이 마주쳤다.

"어......"

골목에서 무언가 기어 나왔을 때 처음에는 고양이인가 싶었다. 하지만 어디가 머리인지 꼬리인지도 모를 그 검은 덩어리는 고양이는 고사하고 어떤 동물과도 닮지 않았다.

잠시 헛것을 본 건 아닌가 하여 눈을 질끈 감았다 떠보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길 한가운데 있었다. 버려진 인형 같은 건가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봐도 살아있는 무언가였다. 비록 감은색 털가죽이 꾸물꾸물 움직이는 듯한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천천히 위아래로 시선을 옮기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몸을 돌려 재빠르게 반대편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것이 사라지고도 잠시 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햇빛 때문인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도대체 그건 뭐였을까......

차마 쫒아갈 엄두는 나지 않았지만, 혹시나 싶어 그것이 기어 나온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거기에는 검은 꼬리만 남기고 가죽이 벗겨진 고양이 시체 하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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