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공작소

(창작 괴담) 애착 이불

너구리군 2021. 5. 21. 22:51

슬슬 여름이 찾아오는 시기가 되었다.
점점 높아지는 기온과 습도가 조금 쉽게 짜증 나게 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기분을 안 좋게 하는 것은 곰팡이였다.

"아, 이건 못 쓰겠네."

아동용 이불이 완전히 망가졌다. 동물들이 웃고 있어야 하는 자리는 시퍼렇게 물들었고, 어떤 게 사자고, 여우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M씨는 세탁기에서 꺼낸 이불을 집어던지며 한숨을 쉬었다. 혹시 살릴 수 있을까 해서 세탁기를 돌려보았지만 괴상하게 뭉개진 동물들의 웃음만 확인했을 뿐이다.

이 이불은 M씨의 아들이 좋아하는 애착 이불이었다. 겨울에 창고로 보낼 때도 그렇게 울고불고 난리였다. 이제 아주 망가져 버렸으니 얼마나 난리를 칠지 걱정이 앞섰다.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이불을 언제 꺼내냐고 매일 물어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불이 이제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쩔까 고민하던 M씨는 인터넷으로 중고 이불을 찾아보았다. 대충 비슷하기만 하면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하며 동물 그림이 있는 낡은 아이 이불을 찾았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을 찾아보니 그런 물건이 하나 나왔다. 크기도 비슷하고, 적당히 낡았고, 동물인지 뭔지 모를 것이 웃는 그림도 들어가 있었다. M씨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얼른 이불을 사고 싶다고 글을 남겼다.

[이불을 사고 싶은데요]

답변은 늦게 왔다.

[아 이건 파는 거 아니에요 버리려고 한 건데 왜 여기 올라갔지?]

[버려요? 아니요 제가 살게요]

[아니 할머니가 이건 팔면 안 된다고 한 거라서요]

[왜요? 왜 팔면 안 되는데요?]

[몰라요 그냥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러지 말고 나한테 몰래 팔아요]

몇 번의 설득 끝에 M씨는 그 이불을 살 수 있었다.

이불을 파는 사람은 들키면 안 된다며 약속 장소에 이불만 두고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M씨는 이불을 사서 기뻤다.

하지만 그래도 가장 큰 관문은 아이를 속이는 일이었다. 나름 비슷한 걸 찾는다고 찾았는데 똑같은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엄마, 내 이불은? 이제 내 이불 덮을 수 있어?"

"응, 그럼. 여기 있어."

"응? 내 이불이 어디 있어?"

"여기 있잖아."

M씨는 뭔지 모를 것이 웃고 있는 이불을 펼쳐 보여주었다.

"이거... 내 이불 아닌데......"

"아니야, 이거 맞아. 이거 봐, 동물이 웃고 있잖아."

"이거 아니야!"

결국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M씨는 그것을 달래느라 기운이 쪽 빠졌다. 그나마 아들이 울음을 그친 것도 울다 울다 지쳐 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냥 아무 이불이면 어때서......"

그러면서 M씨는 몰래 아들에게 그 이불을 덮어주었다. 몇 번 덮고 익숙해지면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잠에서 깬 아들은 오히려 그전보다 더 심하게 울었다. 이불이 싫다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 M씨도 소리를 지르고 혼내다. 다시 지친 아이가 잠이 들면 싸움이 멈추었다.

지친 M씨도 결국 이불은 집어던지고 잠들었다.

다음 날 M씨는 예정에 없던 일이 생겨 평소보다 늦게 집에 들어갔다.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고도 한참 됐을 시간이라 서둘러 집에 갔다.

"미안, 엄마가 좀 늦었지?"

다행히 아들은 자고 있었다. 그것도 그 이불을 목까지 잘 덮고 자고 있었다.

"엄마 왔는데 계속 잘 거야?"

"응. 잘 거야."

M씨가 들어오는 문소리에 잠이 깼는지 대답은 바로 들려왔다.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싫어. 나 더 이러고 있을 거야."

"저녁 안 먹을 거야?"

"배불러. 더 누워있을 거야."

이쯤 되자 M씨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배부르다니? 뭘 먹었어? 잠깐 일어나 봐."

"아직 다 못 먹었어."

갑자기 밀려오는 두려움에 이불을 잡아채자 이불에 그려진 뭔지 모를 것이 말했다.

"아직 다 못 먹었다니까."

아이는 머리 아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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